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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금녀’의 영역으로 불렸던 건설업계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건설사 오너 2세 여성 임원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사업을 이끌며 맹활약하는 중이다.

 

이형수 건영 회장 딸 이현지 트리니티디앤씨 대표가 선보인 인천 중구 을왕동 ‘더위크앤리조트’. (더위크앤리조트 제공)

이형수 건영 회장 딸 이현지 트리니티디앤씨 대표가 선보인 인천 중구 을왕동 ‘더위크앤리조트’. (더위크앤리조트 제공)

이형수 건영 회장 딸 이현지 트리니티디앤씨 대표가 선보인 인천 중구 을왕동 ‘더위크앤리조트’. (더위크앤리조트 제공)

 

 

 

▶중견 건설사 오너 딸 두각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 세 딸 모두 경영 참여

 

중견 건설사 중에서는 서희건설 딸들이 눈길을 끈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은 딸만 셋이다. 장녀 이은희 부사장은 통합구매본부장을 맡아 주로 자재 매입 등 업무를 맡아왔다. 차녀 이성희 전무는 재무본부에서 재무, 원가 관리 등 회사 살림을 챙긴다. 삼녀 이도희 이사는 원래 검사 출신인데 2020년 미래사업본부 기획실장으로 서희건설 경영진에 뒤늦게 합류했다.

 

이봉관 회장 딸 셋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면서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린다. 장녀 직함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각자 영역에서 성과를 내온 데다 서희건설과 지주사 유성티엔에스 보유 지분도 비슷하다.

 

서희건설 지주사 유성티엔에스는 서희건설 지분 29.05%(지난해 말 기준)를 보유했다. 이 회장과 세 딸이 보유한 유성티엔에스 지분은 21.8% 수준이다. 이 중 삼녀 이도희 이사의 유성티엔에스 지분이 5.36%이고 장녀 이은희 부사장(4.04%), 차녀 이성희 전무(3.53%)가 뒤를 잇는다. 이봉관 회장은 9.18%를 보유했다.

 

이봉관 회장 세 딸이 보유한 서희건설 지분도 엇비슷하다. 이은희 부사장이 0.81%를 보유했고, 이성희 전무와 이도희 이사 지분은 0.72%로 같다. 이 회장은 평소 “서열을 따지지 않고 가장 능력이 출중한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 건설업이 침체에 빠진 만큼 서희건설도 신사업 발굴에 힘쓰는 분위기다. 세 딸이 신사업에서 얼마나 뚜렷한 성과를 내느냐가 경영권 승계 관건이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호반건설 창업주인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 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도 경영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김윤혜 부사장은 호반건설 상업 시설 브랜드인 ‘아브뉴프랑’ 마케팅실장으로 근무하다 2020년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호반프라퍼티 경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호반프라퍼티는 주택 건설, 분양업 등을 진행하는 회사로 2011년 경기도 판교신도시에서 스트리트형 쇼핑몰 ‘아브뉴프랑’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후 광명, 광교신도시 등 수도권 곳곳에서 쇼핑몰을 오픈했다. 김윤혜 부사장은 호반프라퍼티 지분 30.9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호반프라퍼티는 최근 몇 년 새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내며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2019년 농산물 도매법인 대아청과, 금은보석류 판매업체 삼성금거래소를 연달아 인수했고 올 들어서도 M&A 매물을 여럿 검토 중이라는 후문이다.

 

다만 김윤혜 부사장이 호반건설 경영권을 물려받을지는 미지수다. 김상열 이사장 장남 김대헌 사장이 2020년 말 인사에서 호반건설 기획 부문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주택 사업을 총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대헌 사장은 호반건설 지분 54.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과정에서 김대헌 사장 동생 김윤혜 부사장은 호반프라퍼티 경영을 이끌면서 신사업 발굴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건설, 아이에스동서도 ‘여풍’

 

▷권홍사·권혁운 형제 딸들 경영 전면에

 

건설업계 형제 경영인으로 유명한 권홍사 반도건설 창업주,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도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켜왔다.

 

권홍사 창업주는 지난해 9월 딸 권보라 대표에게 조경업 계열사인 아레나레저 지분을 전부 넘겼다. 그동안 보유하던 아레나레저 지분 10%와 아들 권재현 반도건설 부사장이 보유한 지분 90% 등 지분 100%가 모두 권보라 대표 몫이 됐다.

 

권홍사 창업주 딸 권민서 에이피글로벌 대표는 부동산 개발, 분양대행업 등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말 충남 내포신도시 ‘반도유보라 마크에디션’을 시행해 청약 성공을 이끌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순위 청약에서 총 841가구 모집에 1995명이 신청해 평균 2.37 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에이피글로벌 매출은 306억원, 영업이익은 93억원에 달한다.

 

반도그룹은 지주사 반도홀딩스 아래 반도건설, 반도종합건설 등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반도홀딩스 최대주주는 권홍사 회장으로 지분 69.61%를 보유했다. 아들 권재현 부사장 지분은 30.06%이고, 권보라 대표 지분은 0.08%다.

 

반도건설 아파트 브랜드 ‘유보라’는 권보라 대표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피글로벌을 이끌어온 권민서 대표는 부동산 개발업을 계속 키워나갈 전망이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장녀 권지혜 대표도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해 화제에 올랐다. 그는 아파트 브랜드 ‘에일린의 뜰’을 선보이고 욕실 등 건설 자재 브랜드 ‘이누스’ 사업을 이끌다 2019년 돌연 미국행에 올랐다. 아예 경영 일선을 떠나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최근 귀국해 복귀했다. ‘내일을사는사람들’이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신축 아파트 입주 온라인 매칭 플랫폼 ‘헬로입주’ 서비스를 선보였다.

 

헬로입주는 아파트 입주 전후에 시공하는 시스템 에어컨과 커튼·블라인드 설치, 입주 청소 등을 시공자와 연계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다. 서비스 거래와 결제, 할부까지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일일이 시공업체를 찾아 계약을 해야 했는데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다. 권 대표는 “영세한 시공자가 많아 정가 개념이 희박한 데다 AS가 보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템, 평형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고 AS 기간도 보장받는 만큼 소비자들이 보다 편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헬로입주는 올 하반기 수도권 입주 예정 단지를 대상으로 사전 점검, 입주 청소, 타일 줄눈(벽돌, 타일 등을 짤 때의 이음새), 탄성코트(일반 수성페인트 단점을 보완한 친환경 특수도료) 등 4개 아이템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아이템을 늘리고 서비스 지역도 수도권을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권지혜 대표는 아이에스동서 지주사 역할을 해온 아이에스지주 지분 30%를 보유했다.

 

▶동문건설 여성 CEO 눈길

 

▷경재용 회장 딸 경주선 부회장 진두지휘

 

이미 경영 수업을 마치고 건설사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딸들도 적잖다.

 

동문건설 경영은 사실상 故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 딸 경주선 부회장이 이끈다. 지난 4월 별세한 경재용 회장은 아들 경우선 씨, 딸 경주선 동문건설 부회장을 뒀다. 건설업계에서는 주로 장자 승계 사례가 많지만 경우선 씨는 동문건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법무법인 광장,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 등을 거쳤다. 이에 비해 경주선 부회장은 일찌감치 동문건설 경영에 참여해왔다. 중견 IT 기업을 다니다 2012년 동문건설 주택영업팀에 합류했다. 오랜 기간 경영 수업을 받은 후 2019년 동문건설 계열사인 동문산업개발 대표이사를 맡고 동문건설 핵심 사업을 이끌어왔다.

 

경 부회장이 동문건설 경영에 참여한 후 동문건설 실적은 우상향곡선을 그렸다. 매출액이 2019년 3144억원에서 지난해 4048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85억원에서 540억원으로 증가했다.

 

동문건설그룹은 ㈜동문(옛 크레미스)을 통해 동문건설, 동문산업개발을 지배하는 구조다. ㈜동문 지분을 보면 경주선 부회장이 51%, 경우선 씨가 49%를 보유해 경 부회장 지분이 더 많다. 건설업계에서는 경우선 씨가 동문건설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만큼 경주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이형수 건영 회장 딸 이현지 트리니티디앤씨 대표도 건설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 CEO다.

 

이 대표는 세계적인 호텔 경영, 레저 분야 명문으로 손꼽히는 스위스 로잔호텔스쿨(EHL)을 졸업했다. 글로벌 디자인 호텔 네트워크 ‘디자인 호텔스’를 거쳐 독일 베를린 대표 부티크호텔 미첼베르거호텔 부총지배인을 지낸 글로벌 호텔리어다. 2016년부터 트리니티디앤씨 대표를 맡으며 인천 중구 을왕동 더위크앤리조트 개발을 이끌어왔다.

 

이 대표는 영종스카이리조트를 인수한 이후 전면 리모델링해 ‘국내 최초 어반 라이프스타일 리조트’ 콘셉트의 더위크앤리조트를 2020년 11월 오픈했다.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연면적 3만3000㎡(약 1만평) 규모로 지하 2층, 지상 10층에 191개 객실과 각종 부대 시설을 갖췄다.

 

이 대표는 “리모델링하기 전 영종스카이리조트는 주로 40~60대 고객이 많았지만 더위크앤리조트는 20~30대 MZ세대뿐 아니라 40대 이상 패밀리 고객까지 고객층이 한층 다양해졌다. 더위크앤리조트 오픈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신개념 리조트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한편 부동산 개발업계에서는 문주현 MDM 회장 딸 문현정 MDM플러스 이사가 눈길을 끈다.

 

호반건설이 공급한 스트리트형 쇼핑몰 ‘아브뉴프랑’.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 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이 아브뉴프랑 사업을 이끌어왔다. (호반건설 제공)

호반건설이 공급한 스트리트형 쇼핑몰 ‘아브뉴프랑’.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 딸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이 아브뉴프랑 사업을 이끌어왔다. (호반건설 제공)

 

 

 

▶건설업계 여풍 왜

 

▷주부 시각으로 주택 차별화, 신사업 두각

 

 

건설업계에 2세 여풍이 부는 이유는 뭘까.

 

주택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지을 때 평면과 커뮤니티 시설 차별화가 중요해졌다. 이때 오너 2세 여성 임원이 주부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를 곧장 반영하기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동문건설의 경우 2009년 워크아웃에 돌입할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하지만 2016년 동문건설 창사 이래 최대 분양 단지인 경기도 ‘평택 지제역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 4500여가구 분양을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 딸 경주선 미래전략본부 전무가 분양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기 학원을 유치해 학부모 고객을 대거 끌어모았다. 아파트 단지명에 ‘맘시티’를 넣을 정도로 젊은 엄마를 위한 특화 시설,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워 분양 성공을 이끌었다.

 

평택 개발 사업 성공을 계기로 동문건설은 비로소 워크아웃을 졸업하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벗어나 색다른 평면, 특화 시설로 승부수를 거는 상황에서 주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성 임원 역할이 중요해졌다. 특히 오너 2세 딸들은 과감한 의사 결정을 단행하고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딸들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 경기 침체로 건설사마다 신사업 발굴에 힘쓰는 상황에서 오너 2세 딸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딸 권지혜 대표는 오랜 기간 비데 전문 기업 삼홍테크를 이끌면서 ‘이누스’ 브랜드로 욕실 리모델링을 비롯해 위생도기, 수전금구, 타일 사업을 해왔다. 권지혜 대표 주도 아래 삼홍테크가 연매출 300억원 규모 기업으로 성장하자 아이에스동서는 아예 삼홍테크를 흡수합병했다. 이후 권 대표는 아이에스동서에서 이누스사업부를 총괄해왔고 최근에는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해 주택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다.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부사장, 이현지 트리니티디앤씨 대표도 각각 쇼핑몰, 리조트 등 신사업을 키우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한편에서는 건설업계 여풍이 ‘반짝 돌풍’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보수적인 건설업계 분위기상 대규모 개발 사업 수주, 해외 사업 진출 등 굵직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자리 잡기 쉽지 않다는 편견도 적잖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일부 여성 CEO들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무기로 회사 규모를 키워왔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 남녀 성별을 떠나 바닥부터 건설업 실상을 경험하고 수주, 신사업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아야 치열한 건설업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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